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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하여 불신을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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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히브리서 10:19-25; 3: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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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나의 사역이 번영하는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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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나의 사역이 유지되고 번영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믿음의 싸움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권고하는 사람들을 주위에 많이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믿음과 사역에서 이와같이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을 바꾸도록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성경은 믿음과 사랑의 생존과 번영은 의도적으로 서로의 믿음을 북돋아 주고 사랑하도록 서로를 자극해 주는 기독교인에 달려있다고 말합니다. 의도적으로 함께하는 믿음의 복돋움 없이 우리의 열정은 식고,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며, 죄에 속아 강팍해 지고, 누군가가 우리를 잡아채지 않으면(야고보서 5:19, 유다서 23), 우리의 일명 믿음은 파괴되고 불신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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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일주일 전쯤 같이 사역하는 형제에게서 나의 믿음을 세워주고 희망을 주는 그리고 내가 계속할 수 있도록 복돋아주는 그런 엽서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보내진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 보내진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기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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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사랑하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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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우리의 구원자여, 우리를 믿음의 가족으로서 선례없이 기도 하도록 변화시킴으로서 영광을 받으소서. 당신과의 새로운 친밀한 대화 속에 큰 기쁨과 풍요을 발견하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새로운 건강과 생명력을 경험하게 하소서. 강력하고 증가된 중재를 통해서 당신의힘을 더욱 부어주심으로 우리 나라와 전세계에서 어둠의 세력을 이길 수 있도록, 그래서 당신의 이름이 만방에 높여지고 경배되도록 허락하소서. 특별히 당신의 종, 쟌(John)이 베들레헴 교회의 미래에 중요한 관건들을 놓고 분별하기 위하여 분투할때 인도하여 주소서. 불확실 속에서도 당신의 온전한 인도함을 확신함으로 그의 평안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소서.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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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종 빌(Bill)<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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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격려는) 우편을 통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더 자주 일어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아침에 나누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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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을 싸워 이기고 믿음의 싸움을 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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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지난주에 로마서 4:20의 말씀을 통해 믿음-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은 장래 지향적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약속은 과거에 있었던 행위, 즉,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믿는 죄인들을 위해 얻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믿음은 단순히 그 행위를 응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행위의 반석에 서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가져다 주신 모든 약속들을 고대하며, 그 약속에 소망을 갖고, 믿음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믿은은 미래 지향적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진정어린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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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동시에 이런한 믿음은 사랑과 의의 근원임을 보았습니다. 갈라디아서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모든 사람과 선의 근원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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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그리고 이 진리의 반대도 보았습니다: 불신은 모든 죄의 근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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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그래서 기독교인의 삶에 가장 우선은 불신과 싸워 이기고 믿음의 싸움을 싸우는 것이라고 결론 지었었습니다. 기독교인이기 전에 믿음을 위해 싸우고 불신과 싸움을 했지만 지금 우리는 기독교인이고 전쟁이 끝이 났슴으로 휴식할 수 있다; 나는 믿는 자다; 나는 싸움을 있겼다 라는 관념에서 없애야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관념입니다. 불신의 미묘함에 공격받기가 아주 쉬습니다. 생의 마지막에 바울은 기독교인으로 살았던 수십년을 돌아보며 (디모데후서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기독교 인으로 사는 내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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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믿음의 싸움에서의 다른 믿는 자들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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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그가 싸움을 한 여러 방법중의 하나는 위해서 기도하고 권고하는 다른 믿는 자들로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항상 팀을 이우어 여행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는 외톨이가 아니었습니다. 바나바와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와 아리스다고와 마가와 에바브라와 다른 이들이 있었습니다. 한때 그가 부득이 하게 혼자서 아테네에 갔을 때에 그곳의 넘치는 악에 그의 심령이 거의 부서져 즉시 디모데에게 그와 합류하도록 한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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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바울의 믿음 (그리고 다른 사역자들의 믿음)은 인간적인 협력가 필요치 않았을 거라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고린도 후서 7:5-7절을 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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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을 우리에게 보고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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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바울은 두려움이 그의 삶에 덮쳐올때 그의 믿은을 견고하게 해주는 가까운 친구들의 협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20:20 비젼의 추춧돌 입니다<sup>(1)</s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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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히브리서 10:24-25 의 다섯가지 요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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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이제, 오늘의 본문 히브리서 10:24-25을 봅시다. 이 두절의 말씀에서 간단한 다섯가지 요점을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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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일부 사람들의 습관처럼 함께 모이기를 경시하지 말고 서로를 격려하며 마지막날이 가까워 질수록 더욱 더 어떻게 서로를 사랑하고 선한 일에 힘쓰도록 북돋아 줄 수 있는 지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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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1. 함께하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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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우리는 함께 모이도록 명령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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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여기서 말하는 일종의 모임은 상호 격려해주고 서로를 분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교회의 예배만 조용히 참석하고 빠져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종류의 모임에서는 당신이 상대에게 더욱 사랑하도록 도와 주는 그런 말들과 또 상대가 당신이 더욱 사랑하도록, 그리고 당신이 더 많은 선한 일을 하도록 힘을 가지게 도와 주는 그런 말들이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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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이것이 바로 우리 교회가 소모임을 대단히 중요시 여기는 이유입니다. 거기에는 ‘서로’ 라는 상당히 중요한 수위의 개인적 상호관계를 필요로 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주일 아침에 예배를 드리러 오는 것-중요하기 그지 없지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나 서로를 권고하고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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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이렇게 첫번째 요점은, 소모임을 통해 함께 '''만나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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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모임을 갖지 않는 습관을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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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두번째 요점은, 모임을 가지지 않는 습관에 빠지지 말자 입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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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첫번째 요점과 매우 유사합지만 25절의 말씀이 더욱 이점을 강조 합니다. 그래서 나도 이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여기서 주는 경고는 다른 기독교인들과 이런 모임을 갖지 않는 것은 습관화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요: 당신은 남에 눈에 잘 띄지 않게 갈 수 있는, 개인적 관계나 책임이 없는, 그런 제법 큰 교회 모임에만 가는 경향이 있습니까? 지금 그런 형식의 삶이 편안하십니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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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중 다수가 ‘그렇다’ 라고 답해야 할 겁니다. 왜 그럴까요? 습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에게 편한거죠. 실제로 이런 식으로 기독교인의 삶을 보는 것이 당신의 전형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이 당신에게 위협입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선행하도록 복돋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그런 소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 주님의 뜻에 벗어나는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는 것을 당신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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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두번째 요점은: 이런식으로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습관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그런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올해에 그것을 없애도록 다짐 하십시요. 우리는20:20 비젼으로 여러분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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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3. 증가하는 빈도와 진지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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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세번째 요점은 그런 당신의 모임의 빈도와 진지함이 심판이 날이 다가옴에 따라 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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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25절 후반에 말합니다.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그날은 예수님이 오시는 말세를 말합니다. 스트레스와 문제점 그리고 위험은 역사가 끝에 가까워 질 수록 늘어납니다. 당신의 믿음과 사랑에 더욱 더 많은 사탄의 역사와, 더 악하고 더 많은 위협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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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예수님은 마태복음 24:11-12에서,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대에 히브리서 10:25절의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당신의 사랑이 사탄과 악의 맹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신을 사랑하고 선행하도록 복돋아 주는 사람들과 만나야만 합니다. 마지막 날이 가까움에 따라 혼자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화 있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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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기도와 권고를 위한 우리 모임을 좀더 자주 그리고 좀 더 진지하게 그리고 환란과 악의 몰려드는 폭풍을 보면서 촉박하게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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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4. 사랑 하게 하는 힘의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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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믿는 자들과 함께 특별히 사랑할 수 있도록 힘을 주기 위한 그런 모임을 가지십시요. 사랑 하게 하는 힘의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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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의도 없이 그냥 모이지 마십시요. 그냥 아무렇게나, 기독교인 모임은 좋은 거니까 그냥 우리 같이 만나서 얘기하자 라고 말하지 마십시요. 물론 좋은 거지요. 얘기하는 것은 매우 좋은 겁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여러분이 모임을 가볍게 그리고 열의 없게 가지기에는 치러야 하는 댓가가 너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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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24절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라고 말합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임에서 떠날때, 사랑할 수 있는 더 큰 힘과, 사랑할 수 있는 더 많은 자원과, 사랑할 더 많은 동기와, 사랑과 선행을 할 수 있는 지혜 가지게 됩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선행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영광이 달린 문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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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분명한 목적이 있을 뿐 아니라, 다급한 의도도 있습니다. 영문 성경에 사용된 “Consider (돌아보아)” 라는 단어는 우리가 특별히 서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우리는 온갖 세상의 것들을 생각하면서20:20 모임에 무작정 나가지 않습니다. 임무를 띠고 참석합니다. 우리는 찾는 중에, 주목하고, 들으며, “considering (돌아보며)” 참석합니다. David (데이빗)이 오늘 필요한게 뭐지? 오늘 저녁, 무엇이 Noël (노엘)을 강건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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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그래서 네번째 요점은 이렇습니다: 의도적인 모임을 가져라. 서로에게 사랑과 선행을 할 수 있는 힘을 주기를 목표로 삼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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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5. 하나님의 약속에의 믿음을 강건케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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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마지막 요점은 다음 질문의 답에 있습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선행하도록 하게 할 수 있을까? 무엇이 사랑의 근원인가? 무엇이 모든 의와 진정한 선행의 근원인가? 그답은 하나님의 약속안에 간결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다섯번째 요점은 이렇습니다: 모든 소모임의 주요한 기본 목적은 하나님의 약속에의 믿음을 강건케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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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이것은 23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이렇듯 이 두가지는 가깝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도록 격려하는 것 그리고 서로가 하나님의 약속에의 소망을 굳게 잡도록 도와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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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당신은 어떻게 누군가를 집안과 직장에서 만나는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선행하도록 격려합니까? 정답: 하나님의 약속에의 그들의 소망을 쌓는다. 사랑은 하나님의 약속에의 '''믿음'''에 곧은 뿌리를 두고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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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우리 권고의 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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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마지막으로 3:12-13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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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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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주의 깊에 보십시요: 우리가 서로를 권고함의 표적은 두가지 입니다. 첫째는, 12절에 보는 거 같이,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 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우리 마음 속의 불신을 싸우도록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이것은 악이며 우리를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우리를 인도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우리 권고의 표적은, 13절에 말씀데로, 죄의 유혹입니다: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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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이 두 표적의 관계는 간단합니다. 불신의 마음은 죄를 잉태합니다. 그리고 죄은 사랑의 반대 입니다. 그리서 우리 소모임의 기본 의제는 명확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불신을 싸우도록 도와야만 합니다. 서로가 믿음의 싸움을 싸우도록 도와야만 합니다. 어떤 누구도 이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도 틀림없지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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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지금, 같이 머리를 숙이고 주님께 여러분이 그 필요성을 깨닫게 해달라고 그리고 그 필요를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는지 들어내 달라고 기도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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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 비젼은 사도행전 20장 20절의 말씀에 따라 베들레헴 침례교회의 사역자들이 비젼을 가지고 추진하는 소모임 체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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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역개정<br>

Revision as of 15:53, 8 Jul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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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하여 불신을 싸우자


히브리서 10:19-25; 3:12-14


나의 사역이 번영하는 이유


나의 사역이 유지되고 번영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믿음의 싸움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권고하는 사람들을 주위에 많이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믿음과 사역에서 이와같이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을 바꾸도록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성경은 믿음과 사랑의 생존과 번영은 의도적으로 서로의 믿음을 북돋아 주고 사랑하도록 서로를 자극해 주는 기독교인에 달려있다고 말합니다. 의도적으로 함께하는 믿음의 복돋움 없이 우리의 열정은 식고,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며, 죄에 속아 강팍해 지고, 누군가가 우리를 잡아채지 않으면(야고보서 5:19, 유다서 23), 우리의 일명 믿음은 파괴되고 불신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일주일 전쯤 같이 사역하는 형제에게서 나의 믿음을 세워주고 희망을 주는 그리고 내가 계속할 수 있도록 복돋아주는 그런 엽서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보내진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 보내진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기도였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의 구원자여, 우리를 믿음의 가족으로서 선례없이 기도 하도록 변화시킴으로서 영광을 받으소서. 당신과의 새로운 친밀한 대화 속에 큰 기쁨과 풍요을 발견하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새로운 건강과 생명력을 경험하게 하소서. 강력하고 증가된 중재를 통해서 당신의힘을 더욱 부어주심으로 우리 나라와 전세계에서 어둠의 세력을 이길 수 있도록, 그래서 당신의 이름이 만방에 높여지고 경배되도록 허락하소서. 특별히 당신의 종, 쟌(John)이 베들레헴 교회의 미래에 중요한 관건들을 놓고 분별하기 위하여 분투할때 인도하여 주소서. 불확실 속에서도 당신의 온전한 인도함을 확신함으로 그의 평안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소서.

당신의 종 빌(Bill)

(이러한 격려는) 우편을 통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더 자주 일어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아침에 나누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불신을 싸워 이기고 믿음의 싸움을 싸우기


지난주에 로마서 4:20의 말씀을 통해 믿음-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은 장래 지향적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약속은 과거에 있었던 행위, 즉,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믿는 죄인들을 위해 얻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믿음은 단순히 그 행위를 응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행위의 반석에 서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가져다 주신 모든 약속들을 고대하며, 그 약속에 소망을 갖고, 믿음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믿은은 미래 지향적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진정어린 소망입니다.


동시에 이런한 믿음은 사랑과 의의 근원임을 보았습니다. 갈라디아서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모든 사람과 선의 근원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의 반대도 보았습니다: 불신은 모든 죄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삶에 가장 우선은 불신과 싸워 이기고 믿음의 싸움을 싸우는 것이라고 결론 지었었습니다. 기독교인이기 전에 믿음을 위해 싸우고 불신과 싸움을 했지만 지금 우리는 기독교인이고 전쟁이 끝이 났슴으로 휴식할 수 있다; 나는 믿는 자다; 나는 싸움을 있겼다 라는 관념에서 없애야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관념입니다. 불신의 미묘함에 공격받기가 아주 쉬습니다. 생의 마지막에 바울은 기독교인으로 살았던 수십년을 돌아보며 (디모데후서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기독교 인으로 사는 내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믿음의 싸움에서의 다른 믿는 자들의 역할


그가 싸움을 한 여러 방법중의 하나는 위해서 기도하고 권고하는 다른 믿는 자들로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항상 팀을 이우어 여행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는 외톨이가 아니었습니다. 바나바와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와 아리스다고와 마가와 에바브라와 다른 이들이 있었습니다. 한때 그가 부득이 하게 혼자서 아테네에 갔을 때에 그곳의 넘치는 악에 그의 심령이 거의 부서져 즉시 디모데에게 그와 합류하도록 한적이 있습니다.


바울의 믿음 (그리고 다른 사역자들의 믿음)은 인간적인 협력가 필요치 않았을 거라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고린도 후서 7:5-7절을 보십시요.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을 우리에게 보고 하였느니라.


바울은 두려움이 그의 삶에 덮쳐올때 그의 믿은을 견고하게 해주는 가까운 친구들의 협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20:20 비젼의 추춧돌 입니다(1).


히브리서 10:24-25 의 다섯가지 요점


이제, 오늘의 본문 히브리서 10:24-25을 봅시다. 이 두절의 말씀에서 간단한 다섯가지 요점을 보고자 합니다.


일부 사람들의 습관처럼 함께 모이기를 경시하지 말고 서로를 격려하며 마지막날이 가까워 질수록 더욱 더 어떻게 서로를 사랑하고 선한 일에 힘쓰도록 북돋아 줄 수 있는 지 살펴봅시다.


1. 함께하는 모임


우리는 함께 모이도록 명령 받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종의 모임은 상호 격려해주고 서로를 분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교회의 예배만 조용히 참석하고 빠져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종류의 모임에서는 당신이 상대에게 더욱 사랑하도록 도와 주는 그런 말들과 또 상대가 당신이 더욱 사랑하도록, 그리고 당신이 더 많은 선한 일을 하도록 힘을 가지게 도와 주는 그런 말들이 오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교회가 소모임을 대단히 중요시 여기는 이유입니다. 거기에는 ‘서로’ 라는 상당히 중요한 수위의 개인적 상호관계를 필요로 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주일 아침에 예배를 드리러 오는 것-중요하기 그지 없지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나 서로를 권고하고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첫번째 요점은, 소모임을 통해 함께 만나자는 것입니다.


2. 모임을 갖지 않는 습관을 버리자


두번째 요점은, 모임을 가지지 않는 습관에 빠지지 말자 입니다.

이것은 첫번째 요점과 매우 유사합지만 25절의 말씀이 더욱 이점을 강조 합니다. 그래서 나도 이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여기서 주는 경고는 다른 기독교인들과 이런 모임을 갖지 않는 것은 습관화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요: 당신은 남에 눈에 잘 띄지 않게 갈 수 있는, 개인적 관계나 책임이 없는, 그런 제법 큰 교회 모임에만 가는 경향이 있습니까? 지금 그런 형식의 삶이 편안하십니까?

여러분 중 다수가 ‘그렇다’ 라고 답해야 할 겁니다. 왜 그럴까요? 습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에게 편한거죠. 실제로 이런 식으로 기독교인의 삶을 보는 것이 당신의 전형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이 당신에게 위협입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선행하도록 복돋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그런 소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 주님의 뜻에 벗어나는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는 것을 당신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번째 요점은: 이런식으로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습관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그런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올해에 그것을 없애도록 다짐 하십시요. 우리는20:20 비젼으로 여러분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3. 증가하는 빈도와 진지함


세번째 요점은 그런 당신의 모임의 빈도와 진지함이 심판이 날이 다가옴에 따라 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5절 후반에 말합니다.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그날은 예수님이 오시는 말세를 말합니다. 스트레스와 문제점 그리고 위험은 역사가 끝에 가까워 질 수록 늘어납니다. 당신의 믿음과 사랑에 더욱 더 많은 사탄의 역사와, 더 악하고 더 많은 위협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11-12에서,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대에 히브리서 10:25절의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당신의 사랑이 사탄과 악의 맹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신을 사랑하고 선행하도록 복돋아 주는 사람들과 만나야만 합니다. 마지막 날이 가까움에 따라 혼자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화 있을지니.


기도와 권고를 위한 우리 모임을 좀더 자주 그리고 좀 더 진지하게 그리고 환란과 악의 몰려드는 폭풍을 보면서 촉박하게 가집시다.


4. 사랑 하게 하는 힘의 부여


믿는 자들과 함께 특별히 사랑할 수 있도록 힘을 주기 위한 그런 모임을 가지십시요. 사랑 하게 하는 힘의 부여.


의도 없이 그냥 모이지 마십시요. 그냥 아무렇게나, 기독교인 모임은 좋은 거니까 그냥 우리 같이 만나서 얘기하자 라고 말하지 마십시요. 물론 좋은 거지요. 얘기하는 것은 매우 좋은 겁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여러분이 모임을 가볍게 그리고 열의 없게 가지기에는 치러야 하는 댓가가 너무 큽니다.


24절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라고 말합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임에서 떠날때, 사랑할 수 있는 더 큰 힘과, 사랑할 수 있는 더 많은 자원과, 사랑할 더 많은 동기와, 사랑과 선행을 할 수 있는 지혜 가지게 됩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선행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영광이 달린 문제 입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을 뿐 아니라, 다급한 의도도 있습니다. 영문 성경에 사용된 “Consider (돌아보아)” 라는 단어는 우리가 특별히 서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우리는 온갖 세상의 것들을 생각하면서20:20 모임에 무작정 나가지 않습니다. 임무를 띠고 참석합니다. 우리는 찾는 중에, 주목하고, 들으며, “considering (돌아보며)” 참석합니다. David (데이빗)이 오늘 필요한게 뭐지? 오늘 저녁, 무엇이 Noël (노엘)을 강건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까?


그래서 네번째 요점은 이렇습니다: 의도적인 모임을 가져라. 서로에게 사랑과 선행을 할 수 있는 힘을 주기를 목표로 삼아라.


5. 하나님의 약속에의 믿음을 강건케 함


마지막 요점은 다음 질문의 답에 있습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선행하도록 하게 할 수 있을까? 무엇이 사랑의 근원인가? 무엇이 모든 의와 진정한 선행의 근원인가? 그답은 하나님의 약속안에 간결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다섯번째 요점은 이렇습니다: 모든 소모임의 주요한 기본 목적은 하나님의 약속에의 믿음을 강건케 함이다.


이것은 23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이렇듯 이 두가지는 가깝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도록 격려하는 것 그리고 서로가 하나님의 약속에의 소망을 굳게 잡도록 도와주는 것.


당신은 어떻게 누군가를 집안과 직장에서 만나는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선행하도록 격려합니까? 정답: 하나님의 약속에의 그들의 소망을 쌓는다. 사랑은 하나님의 약속에의 믿음에 곧은 뿌리를 두고 자랍니다.


우리 권고의 표적


마지막으로 3:12-13를 봅시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주의 깊에 보십시요: 우리가 서로를 권고함의 표적은 두가지 입니다. 첫째는, 12절에 보는 거 같이,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 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우리 마음 속의 불신을 싸우도록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이것은 악이며 우리를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우리를 인도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우리 권고의 표적은, 13절에 말씀데로, 죄의 유혹입니다: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이 두 표적의 관계는 간단합니다. 불신의 마음은 죄를 잉태합니다. 그리고 죄은 사랑의 반대 입니다. 그리서 우리 소모임의 기본 의제는 명확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불신을 싸우도록 도와야만 합니다. 서로가 믿음의 싸움을 싸우도록 도와야만 합니다. 어떤 누구도 이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도 틀림없지 도움이 필요합니다.


지금, 같이 머리를 숙이고 주님께 여러분이 그 필요성을 깨닫게 해달라고 그리고 그 필요를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는지 들어내 달라고 기도하십시요.







(1) 20:20 비젼은 사도행전 20장 20절의 말씀에 따라 베들레헴 침례교회의 사역자들이 비젼을 가지고 추진하는 소모임 체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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